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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 캐리 트레이드의 역습


[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0% 이상 급등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뒤흔들렸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다. ‘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통화로 자금을 빌려 금리가 높은 국가나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이다. 통화 가치가 안정적일 때는 유리하지만 최근처럼 엔화가 급등하면 수익이 크게 줄어든다


# 2021년 이후 엔 캐리 트레이드로 헤지펀드 美기술주에 ‘집중 투자’


최근 몇 년간 엔화 케리 트레이딩 전략은 월가에서 가장 인기있는 전략이었다. 일본 중앙은행(BOJ)이 금리를 인하하면서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한 덕분이다. 헤지펀드와 선물 트레이더들은 대규모로 엔화를 매도하는 포지션을 취해왔다. 그 결과 엔화는 달러·엔 환율은 160엔(38년 만에 최저)까지 떨어졌다. 동시에 이 시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상 사이클에 진입하면서 미·일 금리 차가 확대됐다. 엔 캐리 트레이드 규모는 더욱 확대됐다.


헤지펀드들은 엔화 매도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레버리지 포지션을 취한 뒤 주로 미국 기술주에 투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헤지펀드들이 엔화를 싸게 조달해 미국 빅테크 주식에 집중 투자했다고 보도했다. 소시에테제네랄의 외환 전략가 키트 저크스는 “2021년 이후 엔 캐리 트레이드가 본격화하면서 달러·엔 환율과 나스닥 지수의 동조화 현상이 강화됐다”며 “엔 캐리 자금이 신흥국으로 유입되기보다 대만 주식, 달러, 미국 기술주 등에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 엔 캐리 트레이드의 역습,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과 엔화 급등 



금융시장의 ‘일방통행’은 지난 7월 말 갑작스럽게 변화했다. 일본은행(BOJ)이 추가 금리 인상을 시사하면서 엔화 가치가 오른 것이다. 일본은행은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해제한 이후 지난 7월말 0.25%로 금리를 깜짝 인상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는 경제·물가 전망이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추가 금리 인상을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곧 금리를 인하겠다고 예고한 것과 정반대의 시나리오다.


금리 인상은 통화 가치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투자자들이 높은 수익률의 채권을 구매하기 위해 해당 국가의 통화를 매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시기 달러는 금리 인하 전망으로 인해 하락 압력을 받고 있어, 엔화에 대한 매수세가 더욱 강해졌다. 그 결과 일본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약 160엔에서 145엔으로 8% 상승했고 9월 6일 현재 142엔까지 가치가 오른 상태다. 


# 엔화 급등에 ‘숏스퀴즈’…’블랙먼데이’로 이어져 


금리가 오르면 엔캐리 트레이드 여건은 악화된다. 내야 할 이자가 늘어나는 데다, 더 높은 가격에 엔화를 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융시장은 큰 혼란에 빠졌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엔화 약세에 베팅한 투자자들이었다. ‘엔화 숏스퀴즈’가 급증했다. 숏스퀴즈는 자산 가격 하락에 베팅한 공매도 투자자가 가격이 뛸 때 더 큰 손실을 줄이기 위해 해당 자산을 되사는 것이다. 8월5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141엔대로 떨어졌고 일본 닛케이지수는 12.4% 폭락해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1987년 10월 20일 ‘블랙먼데이’를 경신한 수준이다.



국내 증시 역시 코스피지수가 9.88% 급락, 역대 최대 수준의 낙폭을 보였다. 애플과 엔비디아 등 빅테크도 청산의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공포 지수로 여겨지는 변동성 지수는 펜데믹 수준으로 치솟았다. 투자자들이 자산을 모두 매도하면서 비트코인은 장중 18% 넘게 하락, 5만 달러를 밑돌았다. 비트코인이 5만 달러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2월 이후 약 6개월 만이다. 당시에는 미국 경기침체 우려로 인해 세계 증시가 폭락했다는 보도가 많았지만, 실제로 폭락의 주요 원인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었다.


# 엔 캐리 청산 때마다 위기 있었다 


시장의 관심은 엔 캐리 트레이드의 규모로 향한다. 전체 규모를 파악해야 청산이 언제 종료될지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이체방크(DB)는 IMF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1990년 초반부터 현재까지 엔 캐리 트레이드에 사용된 엔화의 규모를 약 20조 달러로 추산했다. 또한, UBS의 제임스 맬컴 글로벌 전략가는 2011년 이후 누적된 달러·엔 캐리 트레이드 규모가 약 5.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이러한 막대한 규모로 인해 일부 금액만 청산되더라도 세계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가 급격히 청산된 시점은 △1998년 한국의 IMF 사태를 비롯한 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였다. 이처럼 주요 경제 위기 때마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이 큰 시장 변동성을 유발해 왔다.


# 달러 엔 환율 116엔 예상…청산 여진 이어질 것  


엔 캐리 트레이드는 어느 정도 청산되었을까. UBS의 제임스 맬컴 글로벌 전략가는 파이낸셜 타임스(FT)에서 “지난 몇 주 동안 약 2.000억 달러의 포지션이 청산됐으며, 이는 최종적으로 예상되는 청산 규모의 약 75%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JP모건의 벤자민 샤틸 외환 전략가도 “엔화 캐리 트레이드의 정확한 규모나 청산된 양을 알 수 없지만, 투기적 거래에 사용된 엔화 숏 포지션은 대부분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금융 당국의 개입, 일본은행의 깜짝 금리 인상, 그리고 추가적인 긴축 예고로 인해 당분간 더 많은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이어질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씨티의 오사무 타카시마 외환 분석가는 “현재의 조정은 끝의 시작일 뿐”이라며, 2026년까지 엔화가 달러 대비 129엔에 도달하고, 그 다음 해에는 116엔까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 가장 먼저 달러·엔 환율 주시해야…비트코인 단기적으로 하락 예상 


시장에선 글로벌 금융 시장이 달러·엔 환율 흐름에 달려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아서 헤이즈 비트멕스(BitMEX) 공동 설립자 및 몰스트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투자를 위해 가장 먼저 확인하는 요소로 달러·엔 환율을 꼽으며, 앞으로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알파밸류의 리서치 책임자 피에르-이브스 고티에르도 “연준의 금리 인하 시기와 미국 고용 상황보다 엔화의 추이가 더 중요하다”며 “모든 것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아서 헤이즈는 “지금과 같이 엔화 강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비트코인 가격이 단기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급격한 금리 인하가 글로벌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연준의 신속한 금리 인하는 오히려 시장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지 라가리아스 포르비스 마자르(Forvis Mazars) 수석 경제학자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연준의 대규모 금리 인하는 금융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경기 침체의 위험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투자자들은 미국의 금리 정책뿐만 아니라 엔화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출처: 블록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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