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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폭락' 독일 정부 때문?…진짜 이유는


하나의 유령이 시장을 배회하고 있다. 불확실성이라는 유령이. 비트코인 ETF 매수자들은 물론, 비트코인 채굴자들, 가상자산 관련 기업들, 비트코인 현물과 ETF를 보유한 개인과 기관들, 더 나아가 전 세계의 모든 가상자산 투자자들 모두가 이 유령에게 고통받고 있다.

독일 정부와 마운트곡스 때문에 가격이 하락했나?

4일 오전까지 6만 달러를 지키고 있던 비트코인 가격은 5일 저녁 5만 4000달러까지 10%가량 하락 후 7일 새벽 5만 8000달러까지 반등했다. 시장에는 독일 정부와 마운트곡스 때문에 가격이 하락했다는 사후적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독일 정부는 4만 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5일 새벽에 움직인 비트코인은 그중 3000개이며 그중 거래소로 이동한 비트코인은 1700개에 불과했다. 최근 비트코인의 하루 거래량은 6~70만 개 수준으로, 1700개 정도가 폭락을 일으킬 수 없다.


마운트곡스 물량 또한 마찬가지이다. 비록 물량을 돌려받는 사람들의 비트코인 평균 단가가 10년 전 시세인 1000달러 미만이기에 물량 투매를 걱정하는 것은 일견 합리적이지만, 14만 개에 달하는 상환물량 전체가 즉시 시장에 풀릴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다. 10년 전에 비트코인을 거래하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보다 비트코인에 진심인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고, 상승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굳이 지금 모든 물량을 팔아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5일 새벽에 이동한 마운트곡스 상환 물량은 4만 7000개 정도이지만, 13시경에 실제 고객 지급을 위해 비트뱅크(BitBank) 거래소로 이동된 물량은 1545개였다. 이 또한 시장에 폭락을 일으키기에는 턱없이 적은 양이다. 더군다나 거래소별로 실제 고객들에게 지급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다르다. 크라켄은 최대 90일, 비트스탬프는 최대 60일이 걸린다고 공지했으며 SBI VC Trade와 비트뱅크도 14일이 소요된다고 한다.


오비이락,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독일 정부와 마운트곡스 관련 소식이 보도된 후 가격이 움직인 것은 사실이지만, 독일 정부와 마운트곡스에서 나온 물량이 가격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전후 인과의 오류(post hoc ergo propter hoc)다.

하락의 원인은 불확실성

하락의 진짜 원인은 시장을 배회하고 있는 불확실성이다. 떨어질까 봐 불안해서 미리 팔고, 파니까 진짜로 떨어진다.


독일 정부는 3000개의 비트코인을 이동했지만 4만 개가 한꺼번에 매각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21만 개의 비트코인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마운트곡스 물량 또한 10년 전 물량이 ‘언제든지 갑자기’ 투매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한다. 독일 정부나 마운트곡스가 대량 투매를 해서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매도해서 가격이 더 하락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매도해야 한다는 불안심리 때문에 매도세가 발생한다.

5일부터 9일 밤까지 독일 정부는 4만 개의 비트코인 중 절반 이상을 매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2만 개의 비트코인이 매각되는 동안 매각으로 인한 폭락은 없었다. 폭락은 매각이 시작되기 전, 3000개 이동 직후 발생했고 가격은 하루 만에 반등했다.


이런 일은 최근 시장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6월 11일 7만 달러 선이었던 비트코인은 6월 12일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미 동부시간 6월 12일 08시 30분)와 연준의 통화정책 공개(미 동부시간 12일 14시)를 앞두고 6만 6000달러까지 하락 후 반등하여 7만 달러를 회복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예상치를 상회했고, 연준은 일곱 차례 연속 동결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악재는 없었고, 가격은 제자리를 찾았다.


미국 시각 5월 1일 파월 연준 의장의 연설 전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연설 하루 전 비트코인 가격은 6만 4000달러에서 5만 6000달러까지 하락했고, 연설 후에는 다시 6만 4000달러 선을 회복했다. 매서울 줄 알았던 파월 의장의 메시지는 예상보다 훨씬 따스했고, 시장은 그 메시지를 소화한 후 가격을 하락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악재는 역시 없었다.

공포, 불확실성, 의심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퍼드(FUD, Fear, Uncertainty, Doubt)라는 단어를 쓴다. 공포, 불확실성, 의심을 한데 묶어 쓰는 말이다.


공포는 미지에서 온다. 어두운 밤길이나 처음 가보는 장소, 사후세계 등이 무서운 이유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포, 불확실성, 의심은 같은 인간의 심리를 칭하는 세 단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가상자산 시장의 경우 미래에 대한 기대심리가 가격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등락의 속도가 매우 빨라 퍼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비트코인 가격이 3월 중순 고점에 비해 25%가량 빠진 이유도 크게 봤을 때 퍼드의 영향이라고 판단한다. 임박했다고 여겨지던 연준의 금리 인하는 올해 안에 이루어질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었고, 미국의 매크로 지표와 연준의 메시지는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다. 가상자산이 주요 의제로 부상한 미국 대선의 경우, 트럼프 후보는 유죄 판결받을 가능성이 있고 바이든 후보는 자신을 ‘흑인 여성’이라고 공식 석상에서 말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 21세기금융혁신법(FIT21)의 초당적 하원 통과로 공세 종말점에 다다랐다고 생각되던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더리움 스테이킹을 다시 두드리며 몽니를 부리기 시작했지만, 이더리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는 최종 승인이 임박했다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시장의 방향성을 가늠하기에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한동안 비트코인 현물 ETF 매수세를 일으키던 헤지펀드들도 포지션을 대거 정리한 것으로 추정되며, ETF와 현물, 선물 모두 속절없는 관망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미 일정 부분 가격에 산입(price-in)되었던 금리 인하는 가능성이 낮아지고, 4월 반감기 이후 채굴자 매도 물량은 늘어났다. 그 와중에 나스닥 빅테크 종목들은 끝없이 상승하며 유동성을 흡수하는 중이다. 비트코인은 ETF로 유입되었던 자금이 이탈하면서 내림세가 지속되고, 그로 인해 다른 가상자산들 가격도 같이 하락한다. 확실한 악재가 없으니 악재가 해소되지도 않는다. 불확실성이 공포가 되고 가격을 끌어내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시장참여자 간 신뢰

사실, 한 걸음 떨어져 보면 우스운 상황이다. 실체적인 악재가 없는 상황에서 시장 참여자들이 우왕좌왕 서로의 눈치를 보며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ETF를 통해 비트코인을 접한 투자자들은 가상자산의 변동성이 처음일 것이다. 비트코인을 오래 거래해 온 가상자산 투자자들에게도 ETF를 통한 증시 자금 유입과 그로 인한 역학 관계 변화가 처음일 것이다. 코비드-19로 전 세계 경제가 수년간 타격을 입은 일도, 높은 금리와 인플레이션이 함께 지속되는 현상도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다. 미증유의 불확실성 앞에 긍정적인 예측이나 미래에 대한 믿음보다는 퍼드가 힘을 얻고, 가격 상승을 바라는 투자자들이 서로를 불신하며 다 함께 가격을 하락시키고 있다.


결국 문제는 시장참여자 간의 신뢰다. 남들도 안 팔고 보유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면 남들이 팔기 전에 내가 먼저 팔아야 한다는 불안감도 해소될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비트코인의 가격을 천문학적으로 증가시킨 배경에는 믿음을 잃지 않고 비트코인을 보유 및 매수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전 세계 수천만의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알지만, 그래도 외쳐 본다. 비트코인의 반등을 바라는 만국의 투자자여, 단결하라!


출처: 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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