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피살’ 나스랄라는 헤즈볼라 상징…친이란 최대 거물
32년간 헤즈볼라 이끌며 ‘막강 군사조직’ 키워
이스라엘군, 베이루트 인근 표적공습…이튿날 “제거” 발표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이스라엘군이 28일(현지시간) 제거했다고 발표한 친이란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64)는 32년간 헤즈볼라를 이끌어온 ‘얼굴’이자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는 1960년 베이루트 동쪽 부르즈 하무드의 난민촌 이슬람 시아파 가정에서 태어난 나스랄라는 남부 항구도시 수르에서 교육을 마치고, 시아파 정당인 아말 운동에 가입했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맞서 이란의 주도로 창설된 헤즈볼라에 합류했고, 1992년 헤즈볼라 공동 창립자이자 당시 지도자였던 아바스 알무사위가 이스라엘의 헬기 공습으로 사망한 뒤 헤즈볼라의 수장인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나스랄라 체재의 헤즈볼라는 30여년간 이란의 지원을 받아 막강한 화력을 지닌 군사 조직을 키웠고, 레바논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당으로도 성장했다.
헤즈볼라의 병력 규모는 3만∼5만명에 달하며 12만∼20만기의 비유도 미사일과 로켓도 보유해 레바논 정부군보다도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지도하에 헤즈볼라는 2006년 이스라엘 군인 2명을 포로로 잡으면서 34일간 이스라엘과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전쟁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모두의 승리 선언으로 끝났고, 헤즈볼라는 아랍권에서 성공적인 대이스라엘 항전으로 칭송받았다.
그의 지도하에서 헤즈볼라는 이런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2000년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철군을 이뤄냈고, 역내 분쟁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가장 영향력이 큰 ‘이란의 대리인’ 역할을 해왔다.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에서는 이란과 함께 민중봉기로 위협을 받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
또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가자 전쟁 중에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표명했고, 이후 11개월 넘게 이스라엘과 무력 대치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헤즈볼라는 하마스와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등 역내 다른 ‘저항의 축’ 세력의 무장대원 훈련소 역할도 담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나스랄라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자손을 뜻하는 ‘세예드'(sayyid)라는 명예로운 호칭까지 얻었다.
1989년 이란 쿰의 신학교에서 잠시 수학한 그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이 무슬림 세계에서 시아파의 2등 시민 지위를 종식한 모델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시아파 지도자의 상징인 검은 터번을 쓰고 턱수염을 길렀던 그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예루살렘 해방, 무슬림과 유대인, 기독교인이 평등한 팔레스타인을 국가 건설을 주장했다.
2006년 이스라엘과 전쟁 이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전화를 하는 것조차 피할 정도로 보안에 신경을 써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이례적으로 그와 인터뷰한 뉴욕타임스 취재진은 눈이 가려진 채 베이루트 남부 교외 지역을 돌고 돌아야 했고 나스랄라의 보안팀은 취재진의 펜까지 검사했다고 한다.
나스랄라는 통상 TV 연설을 통해서만 대중에게 얼굴을 드러내는데, 지난 19일 연설에서는 수십명의 헤즈볼라 대원을 사망에 이르게 한 무선호출기(삐삐) 폭발 공격을 비난하며 보복을 예고했다.
그러나 지난 27일 나스랄라는 이스라엘군의 베이루트 남부 헤즈볼라 본부 표적 공습에 연락이 두절, 생사 불명 상태가 됐다. 이튿날인 28일 이스라엘군은 이번 공습으로 나스랄라를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헤즈볼라는 아직 나스랄라의 생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출처: 블록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