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부진 속 미국發 ‘R의 공포’까지…다중악재 시험대 선 당국
美경착륙? 연착륙? 대미수출 타격 우려…정부, 증시폭락 속 비상대응 체제
중동發 고유가 리스크도…세수 결손에 내수부문 ‘재정 버팀목’ 제한적
(세종=연합뉴스) 송정은 박원희 오지은 기자 = 미국의 경기침체, 이른바 ‘R(Recession)의 공포’가 고개를 들면서 한국 경제에도 충격파가 우려된다.
주가지수를 가파르게 끌어내린 금융시장의 출렁임과는 별개로, 대미(對美) 수출을 엔진으로 경기회복에 시동을 걸고 있는 실물부문에도 타격이 가해진다는 점에서다.
증시 폭락의 근저에 ‘인공지능(AI) 거품론’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한국경제의 기함격인 반도체 업종에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미국 경기의 경착륙을 예단하기는 성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경기둔화, 즉 연착륙 국면이라면 금융시장의 움직임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세수 결손으로 재정 여력이 빠듯한 재정당국으로서는 확실한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에 ‘티몬·위메프’ 사태까지 번지며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외발 충격이 현실화한다면 이중고에 놓일 수 있다.
코스피 폭락, 미국발 경기침체 공포
미국발 경기 침체 공포로 코스피가 급락한 5일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에 전 세계 증기 지표가 나오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 대비 234.64포인트(8.77%) 하락한 2,441.55에 장을 마쳤다. 코스닥은 88.05p(11.30%) 내린 691.28로 마감했다.
◇ 美침체·AI거품론 확산에 수출타격 우려…중동 리스크도
전세계 증시를 패닉으로 몰아넣고 있는 공포는 미국의 경착륙 시나리오다.
미 경기가 가파르게 냉각한다면, 단순히 증시의 범위를 넘어 글로벌 실물경제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대미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한층 강할 수 있다.
작년부터 미국의 견조한 소비와 투자에 힘입어, 자동차·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대미수출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왔다.
우리나라의 수출에서 미국 비중은 18%가량까지 불어났다. 7월 대미수출은 102억 달러로, 역대 7월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12개월 연속으로 월별 최대 실적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6일 “미국 경기가 급격히 악화한다면 자연스럽게 미국의 수요가 줄고 우리 수출도 둔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거품론도 번지고 있다.
챗GPT 이후 빠르게 성장해온 AI 산업의 수익성 문제가 대두된 데다 미국 테크업종의 2분기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다.
AI 시장이 위축된다면 한국 수출품목 1위인 반도체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게다가 중동지역 위기감까지 고조되면서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한다면 최근 안정세로 접어든 소비자물가 상승세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동지역 전쟁이 확산해 유가가 급등하면 우리 경제가 회복하는 데 큰 어려움을 주기 때문에 지켜봐야 할 변수”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미국의 경기침체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지표 둔화와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지표로는 경착륙을 단언하기 어렵다”며 “초과 저축분이 소진되고 코로나19로 봉쇄된 이민이 풀리자 구직이 늘어나면서 노동시장 과열됐다 진정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미국의 경제지표가 나빠진 건 맞지만 주가지수가 이 정도로 폭락할 정도는 아니다”라며 “주식시장 자체의 문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 대출 연체율 두달째 상승…자영업자 9년6개월만에 최고
국내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이 2개월 연속 상승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 명동 골목 상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국내 은행 대출 연체율은 0.51%로 전월보다 0.03%포인트(p) 상승, 이 중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2014년 11월 0.72% 이후 9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 가뜩이나 ‘내수부진’ 힘든데…’세수펑크’ 재정 버팀목 한계
무엇보다 내수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불거진 대외악재라는 점이 한국 경제로서는 부담이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소매판매는 작년보다 2.9% 감소했다. 이는 2009년 1분기(-4.5%) 이후 최대 폭 감소다. 2분기 설비투자는 작년보다 1.3%, 건설기성(불변)은 2.4% 감소하는 등 투자도 부진한 모습이다.
고물가·고금리 속에 소비·투자를 중심으로 내수 경기가 쉽사리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갑작스럽게 불거진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도 소비 심리를 한층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티몬·위메프의 판매대금 미정산 규모는 지난달 31일 기준 2천745억원이다. 정부는 미정산 금액이 최대 1조원에 육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가가 내리고 미국 경제의 침체가 현실화한다면 우리 경제의 소비·투자가 원래 경로보다 위축되거나 회복이 뒤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며 “경제 성장률에 비해서 체감은 잘 안되는, 온도 차가 있는 양극화된 경기 흐름이 더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묘책도 마땅치 않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수 펑크’가 예상되면서 경기의 버팀목격인 정부재정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올해 상반기 국세 수입은 168조6천억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9조9천800억원(5.6%) 감소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세수 결손이 확실시되고 있다.
정부는 비상 모드다.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해서는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필요시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확대간부회의에서 “미국 경기둔화 우려 부각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며 “관계 기관과 함께 높은 경계심을 갖고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유지해달라”고 지시했다.
출처: 연합뉴스